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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4월 월간지 굿뉴스피플 인터뷰1

작성자명이**
조회수1440
등록일2011-07-20

‘따뜻한 주치의’가 되고픈 히포크라테스


법학과 경제학도 공부한 칼럼리스트


10년 동안 의료 봉사로 고향사랑 실천


“내가 바로 환자라는 생각으로 진료”

 




질병의 치료와 예방을 위해 맺은 인연으로 ‘따뜻한 주치의’가 되어 환자의 평생건강을 지켜 드리고자 노력하는 의사선생님이 있다. 늘 환자의 평생 주치의가 되고자 하는 마음가짐으로 진료에 임하고 있는 이상명내과의원의 이상명 원장이다.
이상명 원장은 환자에게 혹시 모를 어딘가에 숨겨져 있을지도 모르는 치명적인 질병은 없는지에 집중하고 있으며, 환자가 아플 때 마치 자신이 아픈 것처럼 진료하려 노력하고 있는 진정한 이시대의 히포크라테스였다.

-평소 말씀하시는 ‘따뜻한 주치의’란 어떤 의사를 말씀하시나요?
의사가 따뜻하다고 하면 대개 ‘친절’을 먼저 떠올리는데, 제가 생각하는 정말 따뜻한 의사란 환자를 대할 때 환자가 아플 때 마치 의사 자신이 아픈 것처럼 생각하고 환자를 대해야 한다는 겁니다. 전문적인 지식으로 질병을 정확하게 진단하고 치료를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지만 환자의 ‘마음’을 읽어주는 그런 의사를 뜻하는 거지요.
이런 얘기를 하면 그런 이상적인 의사가 어디에 있겠냐고 하는 사람들도 있고, 많은 환자를 대하다보면 쉬운 일은 아니지만 저는 이런 ‘따뜻한 주치의’가 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종친회에서 이만의 환경부장관과 함께


-의사란 어떤 매력이 있기에 그 험준한 직업을 택했는지요?
제가 고등학교를 졸업할 무렵에는 광주일고를 나오면 최고의 목표가 서울대 입학이었어요. 당시 제 실력으로는 서울대학교 중에서도 공과대학을 진학할 수 있어서 저는 ‘서울대’를 원했지요. 하지만 부모님이 판단하시기를 서울대 공대보다는 차라리 전남대 의대를 권유하셨어요. 3일 정도를 끙끙 앓았던 것 같아요. 부모님 말씀을 거역할 수 없어, 할 수 없이 전남대 의대 원서를 받으러 갔지요. 그날 비가 내렸는데, 황톳길을 철퍽철퍽 걸어갔었던 모습이 지금도 기억에 생생해요.
그렇게 부모님의 의견으로 의과대학에 입학을 했고, 30여년을 환자를 돌보면서 느낀 건 부모님 생각이 옳았다는 거에요. 인간이 태어나서 결혼을 하고 사망을 할 때까지 인생 자체가 의학과 함께 걸어가게 되어있더라고요. 아이를 잉태하면서부터 병원을 다니기 시작해, 죽음을 맞이할 때까지 인류와 뗄 수 없는 과목이 바로 의학입니다. 이 필수적인 과목을 안 한다면 말이 안 되는 것이지요. 힘들지만 반드시 해야 하고 보람을 느끼고 있으니 제게 의사라는 직업은 천직인가 봅니다.

-의학 공부를 처음 시작했던 때의 마음가짐과 수십년 환자를 보면서 느낀 마음에는 어떤 변화가 있었습니까?
처음 의대에 진학해 공부를 할 때는 내 손으로 환자를 진단하고, 처방해서 환자가 낫는다는 것에 벅찬 감동을 느낄 것이라고 생각하고 힘든 과정을 견뎌왔어요. 그런데 졸업을 하고 병원에 오니 환자를 진단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임을 깨달으면서 조금은 두렵기도 하고 엄청난 책임감을 느끼기도 했어요. 어떤 경우에도 제 한 번의 진단으로 생과 사를 갈라놓기도 한다는 것을 생각하면 절대 소홀히 할 수 없었어요. 그러면서 더욱 ‘내가 만약 이렇게 아프다면’ 하는 마음으로 순간 순간 최선을 다해 혹 숨겨져 있을 지도 모를 위중한 질병을 찾는데 집중합니다. 평소에 의료 행위 본연의 목적 또는 진료의 초점을 저는 ‘조기 진단’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문승수선생의 고향인 완도 장좌리에 추모비건립
현대 사회는 과학과 IT의 발달로 최첨단을 달리고 있는데 이런 모든 과학의 발달도 결국은 건강한 인간 생명의 연장을 위한 의료의 신기술로 이어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겁니다.

-원장님은 ‘낙도 10년 인술’ 펼치고 계시면서 타의 모범이 되고 계시는데, 의료 봉사 활동에 대해 말씀해 주세요.
거창하게 낙도 진료로 인술(仁術)을 펼친다고 칭송들 하시는데, 그것보다는 그저 고향분들을 향한 보답이라는 것이 더 바른 표현이 아닐까 싶습니다. 제가 1988년 개원을 하게 되었는데, 고향인 완도 향우들이 완도 출신 중에서는 처음으로 광주에 내과개인병원을 개원했다는 소식을 듣고 많이들 오셨어요. 그래서 처음부터 제 병원에는 환자들이 많았어요. 그렇게 조금씩 병원이 자리를 잡아가면서 ‘나도 받은 만큼 보답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지난 1989년부터 완도군의 섬들을 순회하며 홀로 사는 노인과 소년소녀 가장, 생활보호 대상자들을 대상으로 무료 진료 및 의약품 공급 등 의료 봉사를 시작했습니다. 직원들이 고생이 많았지요. 새벽 5시부터 준비를 시작해 배를 타고 들어가 진료하고 다시 광주에 오면 밤 10시가 되었으니 매우 힘든 일이었지만 모두 보람으로 느끼며 1년에 많게는 4~5번씩 무료진료를 다녔어요. 지금은 우리나라 의료복지수준이 멀리 섬지역에까지 두루 향상되어, 의료 사각지대가 그리 많지 않아 잠시 중단하고 있어요. 앞으로 기회가 된다면 해외 및 북한 의료 봉사활동을 하려고 계획하고 있습니다.

-현재 이상명내과의원에서는 개인병원으로는 드물게 모든 항목에 대해 건강검진을 실시하고 계시는데요,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까?
제가 환자를 진료하면서 모토로 삼는 것이 있습니다. 그 중 하나는, 1차 진료기관에서는 환자의 병이 대학병원을 가야할 질병인지 아니면 여기서도 충분히 치료가 가능한 것인지를 결정해줘야 한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개인병원으로는 드물게 거의 모든 항목에 대해 건강검진을 실시하고 있습니다. 물론 일반 진료도 해야 해서 힘들긴 하지만 이것 역시 환자들에게 반드시 필요한 것으로, 가까운 곳에서 검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환자에 대한 서비스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사회 전반적인 문제에 대한 칼럼을 직접 써서 홈페이지나 지상에 발표하는 칼럼리스트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어떤 신념으로 이런 집필 활동을 하는지요.
고 김대중대통령의 사상문제, 지역감정에 대하여 언급하기 시작하였고, 시대흐름에 따라 복지국가, 최근에는 환경문제 등에 대하여 저의 생각을 피력하게 되었습니다. 의사가 무슨 사회 문제를 거론하느냐 하는 말씀이신 것 같은데, 저는 의사이기 전에 인간은 사회적 동물로, 태어나면서부터 사회에 소속되어 살아가게 되므로 누구나 사회 전반적인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됩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우리는 적어도 의학, 법학,경제학을 기본적으로 공부해야한다고 생각해 왔습니다. 왜냐하면 앞서 잠깐 언급한 봐와 같이 인간 삷자체가 바로 의학이며, 이미 전공하고 있고, 또한 인간은 모여 살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규칙 다시 말해 법이 있어야 하고, 경제적 활동도 하지 않을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본질적이고 체계적인 공부를 해보고 싶었어요. 그래서 저는 10여년 전에 방송통신대에서 법학을, 그 후에는 경제학을 공부했어요. 두 가지를 공부한 후에는 환경에 대해 좀 더 알고 싶어 ‘보건환경학과’에 입학했는데 너무 힘들어 중도에 하차해 졸업은 하지 못했지요.